오늘도 우린 각자의 방식으로 세상을 견딘다.
사실 어떤 존재이든 태어나서 살아내는 내내 선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의외로 많지 않다.
언제, 어디에서, 누구의 아들인지 딸인지, 키는 얼마나 되는지(젠장), 지적 능력이나 외모는 또 어떨지, 물려받을 재산을 좀 있는지, 심지어는 사랑받거나 혹은 방치 되거나 등 그 무엇 하나 내 선택이라고 할 만한 것이 없다.
말 그대로 ‘태어나고 보니 나‘였을 뿐이다.
그리고 오직 ‘나’라는 존재 이유 하나만으로 크고 작은 세상의 파도를 넘어 살아내야 하는 것이 인간의 삶이 아닌가 싶다.
그러니 우리 인간에게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인정받고 받아들여지고 사랑받는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겠는가.
그래서인지 내 자신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늘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 있다.
무엇 하나 내 선택으로 이루어지지 않았기에, 나도 내가 낯선 상태로, 참 모진 세상을, 어떻게든 잘 견디고 살아왔다는 것을 타인에게 좀 인정받고, 칭찬받고 싶어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솟아 나오는 것이다.
사실 그런 의미에서 어쩌면, 아니 솔직히 아주 상당히 많은 부분에서 내 신앙의 이유는 인정받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아마 미묘와 결혼해서 살다가 나도 이야기를 써 보겠다고 결심하고 뽀작거린 이유도 거기에 있고 말이다.
난 성경에 나오는 그 구절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는데,
‘비판받고 싶지 않거든, 너도 남을 비판하지 말아라. 네가 남을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도 헤아림을 받을 것이다. 네가 남에게 대접받고 싶다면, 너도 남을 대접하거라.‘는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가르침이다.
내가 있는 그대로 나를 인정 받고 싶다면, 나 역시 다른 사람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바라봄이 마땅할 거다.
결혼 서약문에서 미묘에게 그런 약속을 했다.
언제나 가장 먼저 당신의 팬이 되겠다고…
그래서 나는 오늘도 있는 그대로 미묘를 사랑하기 위해 노력한다.
쇼핑몰에서 산 원피스가 모델에겐 종아리 미묘에겐 롱롱피스일지라도.
남들이 성격검사에 흥미를 보일 때, 난 미묘의 승질 상태에 촉각을 기울일지라도.
커피가 다 커피지…라며 카누를 맛있게 먹던 입맛이 결혼 후엔 아침에 내린 커피 아니면 성질부릴지라도.
아무리 생각해도 결혼은 생활이라기보다 실전이자 적응이자 생존이라는 미묘적 타임라인에 속해있을지라도.
아주 단호하고 분명하게 말할 수 있다.
이 모든 주절거림은 있는 그대로의 스몰걸 미묘를 놀리기 위해서!
주절거리고 있다는 사실을 말이다.
여러분이 여기까지 읽고 따라왔다면.
미묘 놀림 글의 공범이신 것이다!
훗. 훗. 훗.
그렇다. 결혼 생활의 묘미는.
놀리고 웃길 수 있는 기회를 절대 놓치지 않는 데에 있다.
비록 예정된 등짝 스매싱이 나를 기다릴지라도,
지금 당장 널 놀릴 수 있다면
그것으로 이 시간이
충분한 가치가
있는 것이다.
아무렴.
웅. 웅.
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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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글!! 보! 보글 보보글!!!!